삼국시대 머리 형태

2022. 11. 30. 15:58미용역사,이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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삼국시대 머리 형태

 

 

고구려. 백제 .고. 신라의 삼국 시대 수식은 대부분 공통된 양식이며, 머리 형태로 신분과 지위를 나타내었다.

피발 (풀어 헤 친 머리)에서 계 (땋아 앞머리 다발)로 발달하여 남자는 상투 머리를 틀고 여자는 쪽 찐 머리 붙임 머리 얹은머리 등 다양하게 수식 하였다

 

1. 고구려 벽화에는 다양한 머리 형태가 나타난다.

 

(1) 미혼녀 쌍 상투 머리: 아직 덜 자란 두발을 두 상 좌 우의 정 변 가까이에 묶 었다 두 개의 계두(상투)를 솟게한 계양이다. 채 머리 민머리 자연적 피 발 상태로서 두발을 길게 늘어 뜨려 왔다. 묶은 정 중 발 머리 짧게 자란 두발을 뒤통수에 낱개 묶었다.

 

(2) 기혼녀 푼기 명식 머리 뒤통수의 계양은 알 수 없어나 머리채를 세 개의 다발로 하여 한 다발의 머리채는 뒤로하고 두 다발의 머리채는 좌우의 볼 쪽에 늘어뜨렸다 쪽 찐 머리

나는 두발을 뒤통수에 낮게 트는 (쪽 진 )계양이다. 얹은머리 뒤통수에서 땋는 두발을 앞의 이마 쪽으로 감마 돌린 후 끝를 이마 가운데가 감아 꼿아 맺었다.

 

2. 백제

 

중국의 사서인 복사 열전 주소 주소에 혼인을 전으로 연예인 머리 형태가 달랐다고 하였다.

 

미혼녀의 머리 형태 편 발로서 뒤통수에다 머리채를 한 갈래로 땋아 목덜미 뒤로 늘어 뜨려 왔다.

 

기혼녀 머리 형태 편 발을 반환 머리 형태로서 뒤통수에 두다발로 나눴던 머리채를 도 상위에 빙빙 둘러서 포 개어 감은 쪽 찐 머리다.

[tlp] 백제 자료가 될 만한 조형적 유물은 물론 벽화 분이 결렬되어 있다. 따라서 중국의 사서를 통한 북 사이 열전에 배변 발수 후로서 미혼녀는 변 발 변 발 궤양을 하였으며 기혼녀는 뒤통수에 두 갈래로 나뉘어 머리둘레에 반 하거나 붙게 쉽게 양을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.

 

3.신라 [구당서 ]동의 전 신라조 에 부인의 모발은 매우 아름답고 길었다. 라고 기술하였다 [삼국사기 ]기록의 가체[가발] 처리기술이 뛰어났다고 하였다. 장발 ,가체(긴 두발)를 외국에 수출하였다고 전한다.

머리 형태 쪽 찐 머리 :삼 국 모두의 머리 형태로서 여자는 두발을 묶어서 목덜미 부분의 쪽을 지었다. 얹은머리: 두발을 뒤통수에 낮게 모아 땋아서 머리 둘레를 둘렀다.

 

가체식: 결 발 또는 변 발의 기법으로 본 발 이외 다른 모 다발을 얹어서 구성한 머리 형태이다.

 

머리 장신구: 양반 부녀들은 대모(거북의 껍질로 만든 장식 빗) , 옥잠, 봉짬잠,용잠, 각잠 ,산호잠, 국짐, 석유잠등을 빈녀를 사용 하였다. 서민들은 돌, 놋쇠 등으로 만든 비녀를 사용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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