2022. 12. 1. 16:10ㆍ미용역사,이론
1. 통일 신라
1) 머리 형태 * 북계 머리: 여자의 두발은 가르마를 정수리까지 나누어서 머리채를 뒤통수 중간에 묶고 오른쪽으로 비틀어 결방하는 쪽 찐 머리로서 우리나라 고유의 북계였다.
* 고계. 반발 머리: 당나라 풍인 고계(머리 위로 높게 올린 머리 형태) 는 고유의 우리 계양과 중국식 계양이 혼재하였다.
신라.통일신라 신라의 부인들도 수발과 계식하기를 즐겼음을 [삼국사기]에 가체를 당나라에 예물로 가져가게 한 미체라는 기록으로 알 수 있다. 안악 제 3호분 미천왕의 왕비상에서 결발 또는 변발의의 기법으로 본 발 이외에 다른 모발을 얹어서 수발했음과 조선 시대의 떠구지 머리를 연상시키는 가체를 사용한 모습을 볼 수 있다. 남자들 역시 신라조에 [신라의 남자는 두발을 잘라 팔고 흑건을 썼다] 라고 하였다. 경주 금령총 출토 도제기마인물고분 벽화의 대부분의 남자는 관모를 착용해 머리 형태를 알기 어려웠다.
발해
* 머리 형태*
여자들은 고계 등 머리 형태를 주로 하였다. 신분 고하에 따라 빗 사용: @ 양반 부녀는 슬슬전대모빗(자라 등껍질에 자개 장식함) 없이 상아로 만듦) 자개 장식 빗 등으로 치장하였다. @평민 부녀는 뿔, 나무,놋쇠 등으로 만든 빗을 사용하였다. 고려시대 송' 원 '명나라 등 중국의 유습이 혼합되어 확고한 제도는 없었다.
여인들의 계양도 신라 시대의 것과 대체로 유사하였으나 중국 송나라 사신 서긍이 쏜 [고려도경]에서 머리 형태를 살펴볼 수 있다.
☆미혼녀 머리 형태 미혼 남자의 수식과 동일하게 남자는 땋아서 노끈으로 여자는 붉은 비단으로 묶었다.
☆기혼녀 머리 형태 쪽 진 머리: 쪽을 뒤통수에 붙이지 않고 땋은 머리로 다발 중간에 틀어 심 홍색 갑사댕기 로 묶어 오른쪽 어깨 위로 드리우고' 그 나머지는 아래로 내려 내 붉은 깁 으로 묶고 작은 비녀를 꽂았다. 얹은머리: 가 체를 사용하여 구름 같은 머리털에 옥잠을 꽂았다고 하였다.
[tlp] 개체 변발: 고려 후기 중국 원나라와 국혼 관계로 족두리 '도두락 '댕기 등 몽골풍의 개체 변발 (정수리 부분의 두발만으로 땋아 늘어뜨리고 나머지 두발은 모두 삭발 형태로 밀어 버림)의 머리 형태를 하였다. 옛날이나 지금이나 남 녀 상관없이 외모 가꾸기는 사회생활의 중요한 요소 인건 마찬 가진것 같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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